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대졸 젊은이가 우연히 재벌 회장과 알게 되고 승승장구한다. 평소 재벌을 미워했지만 이제 그 재벌의 오른팔이 되는 이야기다.
유현종의 ≪불만의 도시≫는 고학으로 대학은 나왔으나 채석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청년 한상조가 우연한 기회에 대기업 사장의 눈에 들어 출세한다는 통속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드라마로 치자면 1980년대의 <사랑과 야망>, 1990년대 <젊은이의 양지> 류의 1960년대 버전인 셈이다.
4·19혁명의 이념은 ‘민주화’와 ‘근대화’의 ‘야누스’로 축약된다. 이것이 야누스임은 이상적이되 비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민주화와 근대화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거머쥔 후진국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기적적인 자본주의 개화 –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 는 강력한 독재를 기반으로 한 초억압국가의 탄생에 힘입은 바 크다. 자원과 기반 시설이 없어 외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도 오히려 남한 사회가 해외 의존형 수출 지향 산업을 추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 속에서 재벌 김강연 사장은 ‘한국 재벌은 장차 세계의 유수한 재벌과 경쟁해야만 한다. 따라서 과도적으로 매판자본이라는 필요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 <선 개발 후 민주>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반해 한상조가 속해 있었던 ‘정간회’의 회원들은 ‘기틀이 단단하게 닦이지 않으면 그 어떤 성장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선 민주 후 개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들이 말하는 민주화의 초점은 ‘분배’다. 김강연 사장도 이것의 중요성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분배의 민주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4·19세대가 근대화의 모델로 삼고 있는 유럽(특히 프랑스)의 민주화는 설사 그것이 훌륭하게 실현되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개발도상국에까지 ‘분배’될 수 없다. 유럽의 민주화는 단지 시민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다른 나라들의 희생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간회의 주장처럼 ‘선 민주’를 했다면 한국은 ‘분배’는커녕 세계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기아와 궁핍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김강연의 말대로 한국 스스로가 든든한 민족자본을 건설하는 ‘미래’에 성공한다 해도 그 결과는 ‘분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고도성장 국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제국주의 시기, 다시 말해 식민지 경영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200자평
1960년대의 신흥 재벌이 매판적으로 사업을 하면서 밀수, 검사 매수, 공무원 매수, 해외 재산 도피, 탈세 등을 저지른다. 1960년대에 그 유명했던 사카린 밀수 사건이 연상된다. 어느 기업 측에서 보면 약간 신경이 거슬릴 것이다.
지은이
유현종은 1940년 전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출신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진학해 졸업한 해인 1961년 ≪자유문학≫에 단편 <뜻있을 수 없는 이 돌멩이>와 중편 <배반>을 추천 받아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으로 <데드라인>, <비무장지대>, <거인> 등이 있으며 1966년 단편집 ≪그토록 오랜 망각≫을 출간했다.
전후 세대와 달리 일상의 핍진한 묘사와 개인의 자의식에 주목했던 동년배 작가(4·19세대)와는 차별적으로 “활동적인 풍속의 반영”(최인훈)에 주력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불만의 도시≫ 역시 주제 의식은 당대 상류층과 매판자본 비판을 향해 있지만 구성은 대중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는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강한 서사성은 역사의 허구화에서 더한층 빛을 발했는데, 1975년 ≪동아일보≫에 ≪연개소문≫을 연재한 후로는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에 매진했다. ≪천년 한≫, ≪임꺽정전≫, ≪대조영≫, ≪낙양성의 봄≫ 등 잘 알려진 역사소설을 다수 써냈다. 1969년에 현대문학상, 1976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엮은이
노희준은 1973년 서울에서 출생해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199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창작집 ≪너는 감염되었다≫(랜덤하우스중앙, 2005) ≪X형 남자친구≫(문학동네, 2009)와 장편소설 ≪킬러리스트≫(제2회 ≪문예중앙≫ 소설상 수상작, 랜덤하우스중앙, 2006)가 있다.
차례
백야(白夜)
아침 북공원(北公園)
무례(無禮)
실신(失神)하는 꽃
약속(約束) 준 날
야누스의 싸움
퇴원(退院) 그 후(後)
태양(太陽)의 흑점(黑點)
그래서 기대(期待)한 거다
여사(女史)들의 사육제(謝肉祭)
성(聖) 호세아
도전(挑戰)
탈색(脫色)의 시간(時間)에서
당신들의 재판(裁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흠, 너무 가까히 보고 있군 자네는. 네가 얘기하는 기업가의 윤리 정도 모르는 김강연은 아니다. 너는 현실과 탁상 이론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원이와 너와의 사고는 상반된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 예를 들어보자. 지금이라도 이 김강연이가 금강재벌을 해체하고 다른 재벌들의 그 더러운 내막을 국민 앞에 털어놓고 심판을 받겠다고 나선다 해 보자. 국민들은 나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나는 모든 재산을 국민들의 이름으로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하겠지. 국가는 나에게 훈장을 내려 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그건 위장병 환자에게 잠깐 먹여 주는 시원한 한 목음의 소화수(消化水)에 불과하지 않을 것인가 말이다. 그렇다고 위장병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내 재산 십오억을 뿌린다 해야 착복하기 좋아하는 높은 백성이 삼켜 버릴 테구. 허무하지 않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만 된다는 격언은 옳은 말이야. 후진국에서 변변한 민족자본이 없는 한 매판재벌의 횡포는 발전 도상에서 볼 때는 필요악이다. 세계의 유수한 재벌과 한국의 재벌의 성격을 똑같은 눈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한상조 그걸 알란 말이다. 당연히 넌 그 가치관에서 도착되어 있겠지? 내 아들도 학교에 다닐 때는 그랬다. 하지만 좀 멀리 봐야 한다. 이 부정과 부패를 극복할 단계를 필연코 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되는 거다. 우선 참여하는 것이다. 현실을 똑바로 주시하며 대의명분을 찾아 점진적으로 고쳐 나가면 되는 게 아닌가. 나의 은퇴로써 현재의 단계는 끝내면 되는 거야. 제二세부터 올바른 기업가로 성장해 달라는 것이다. 내 말 알겠나?”